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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아이들을 풀어놓았더니 시인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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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마음 아픈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다. 해가 갈수록,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아이,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 하루종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바닥만 보는 아이들이 자꾸 늘어만 갔다.

그 원인을 찾다가 '만약 아이들이 병들었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에리히 프롬의 글귀를 보고 공감이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도 제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이 마음껏 놀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 질문 끝에 '자연에서의 수업'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자연은 내 삶에서 큰 스승이자, 학교였고, 언제든 나를 안아주었던 품이었기 때문에, 자연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노는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마침 봄이 아름다운 계절이라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봄 탐험대 모집'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을 모았다. 3학년인 내 첫째아이를 포함하여 1~4학년까지 8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숲의 품으로 뛰어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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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나무 아래에서 출발
ⓒ 이정현


10일 오후 하교 후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근처 산(백사실 계곡)으로 향했다. 산으로 가는 길가의 벚꽃나무 가지가 흔들리며 벚꽃비가 쏟아졌다. "우와!" 아이들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했다. 나는 한껏 설레는 표정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벚나무 아래에 둥글게 서서 '단어 채집장'을 나눠주었다. 그리고선 간단한 퀴즈를 냈다.

"봄은 왜 봄일까요?"

내가 눈을 크게 뜨고서 아이들을 바라보자 아이들이 둥지 속 아기 새들처럼 일제히 입을 벌려 대답했다.

"아! 보옴!"
"보니까요!"
"맞아요. 오늘 우리는 새롭게 보게 된 것, 숲 속에서 들리는 소리 등을 이 노트에 기록해볼게요. 이 노트로 여러 단어들을 채집해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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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속 개나리 터널을 지나
ⓒ 이정현


나는 간단히 수업 활동을 설명을 한 뒤 아이들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 산기슭에 오르니 계곡물이 흐르고 개나리가 터널처럼 양쪽 길가에 샛노랗게 피어 있었다. 마침 수업 전날과 당일 아침까지 비가 내려서, 숲의 향기와 색이 진하고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이 숲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어떤 풍경보다도 잘 어울리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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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과 아이들
ⓒ 이정현


숲 속에 들어선 아이들 중 계곡을 건너던 한 하진이가 "저거 도롱뇽알 아니야?"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일제히 모여 하진이의 손가락 끝을 바라봤다. 물거품 같기도 하고, 알 같기도 한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던 아이들은 이내 흩어져서 나비처럼 이곳저곳을 팔랑거리며 다녔다.

그러다가 마치 꽃에 앉은 나비처럼 가만히 몸을 낮춰 앉아 작은 꽃이나 이끼를 바라보거나,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들으며 '단어 채집장'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오, 이건 뭐지?", "이것 좀 봐!"라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봄비 내린 뒤 계곡물 소리처럼 깨끗하고 경쾌했다.

얼마 뒤 숲속에는 "똑똑 또르르르~"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따구리였다! 아이들은 얼음땡 놀이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과 말을 멈추고 신비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푸르르" 새가 비에 젖은 깃털을 털며 나무에서 날아오르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은 단어 채집장을 열어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그 순간들을 기록하고선 이내 다시 흩어졌다. 곤충을 좋아해서 확대경 등 여러 관찰 도구를 가져온 자림이는 줄지어 가는 개미들과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들을 유심히 들여다봤고, 연제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버섯들을 찾고서는 기뻐했다.

한참 동안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던 시경이는 내가 다가가자 "선생님, 여기서 나무를 바라보면 더 아름답지 않나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시경이의 옆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니 연둣빛 새순이 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도 덩달아 감탄을 했다.

잠시 뒤 나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나는 진짜 나무가 되었다>라는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책을 읽고서 숲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나무 옆에서 진짜 나무가 되어보자고 했더니 아이들은 노루새끼마냥 숲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나무들을 관찰했다. 리현이는 "이 나무는 진짜 사람 같아요!"라며 휘어진 나무의 줄기와 드러난 뿌리를 몸으로 그대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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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된 아이
ⓒ 이정현


흥이 많은 가람이는 건너편 나무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던 아이들은 서로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마음껏 숲을 뛰어 다니다, 다시 벚꽃비를 맞으며 학교 앞으로 향했다.

채집한 단어를 이으니 시가 되고 글이 되고

우리는 학교 앞 아늑한 공간으로 들어가 탁자에 둘러앉아 단어 채집장을 펼쳤다. 숲 속에서 담아온 단어들을 붙여서 쓰니 저절로 글이 되고 시가 되었다. 글과 함께 그림도 그렸다. 머리로 상상해서 쓰거나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느낀 것을 담은 글과 그림이라 더욱 생동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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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학년 은수의 글과 그림
ⓒ 이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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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 시경이의 글
ⓒ 김시경


이처럼 아이들과 숲 속에서 수업을 하며 몇 번이나 눈물이 왈칵 할 정도로 행복했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해방감이 밀려왔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가 생각났다. 교사인 나도 하루종일 칠판 앞에서 수업을 하고 컴퓨터를 바라보며 업무를 하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었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말과 글로 배우고 머리로 외우며 정답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향기를 맡고, 소리를 듣고, 피부로 느끼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수업에서 아이들은 즐거워했고 집중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 속 가상 현실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자연 속에서 주의 깊게 관찰을 하고, 기록하고 표현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업에서 그 희망을 잘 키워나가고 싶다. 자연이라는 학교에서의 배움을 잘 담고, 또 나누다보면 더 많은 아이들을 품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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